노숙자 혹은 Homeless 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은, 그들이 게으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그들이 게으른 것은 외부적 원인에 의해 발생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생명은 원래 역동적인 특징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게으르지 않다.
하루나 이틀 정도는 게으르게 방안에 드러 누워서 쉬는게 가능하겠지만,
한달이나 혹은 1년, 10년 정도를 그들 노숙자들 처럼 게을리 보내는 것은 오히려 힘든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노숙자들의 게으름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이들의 의욕과 희망이 외부적 요인에 의해 제거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노숙자들에 대해 생각할때에 비유할만한 다른 예가 없을까 고민해보곤 한다.
그중에 가장 그럴듯하게 비슷한것이, '공부 못하는 아이들'의 예가 아닐까 싶다.
성적이 낮은 아이들에 대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그들이 게으르거나 머리가 나빠서라고 한다.
그러나 머리가 나쁘다 좋다하는 것은 논외로 두고,
(머리가 나쁘다는 것은 유전자가 나쁘다는 의미이거나 iq가 낮다는 의미인데, 교육학에서는 선천적 차이는 후천적 노력에 비하면 일반적으로 무시할만한 수준이라고 말하고 있고, iq는 성적 좋은 아이들이 맞추는 문제들을 모아 놓은 문제들로 평가하므로, 성적 좋은 아이들이 iq가 높은 것이지 iq가 높은 아이들이 성적이 좋은 것이 아니다.)
그들이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점에 대해 촛점을 맞추어보면,
노숙자들에 대한 생각과 이들 공부 못하는 아이들에 대한 생각이 비슷하고 생각된다.
성적이 낮은 아이들의 성적이 낮은 이유는, 이들이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공부를 하지 않는 이유는 이들이 공부를 재미있는 것으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부를 재미 없다고 생각하는 아이들 중에도 성적이 높은 아이들은 있다.
이들은 재미가 없어도 공부를 해야한다는 외부적 원인에 의해 공부를 억지로 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성적이 낮은 아이들은 '억지로 참고 하는 아이들'에 비해 게으르다는 결론을 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쉽게 간과하는 점이 있다.
공부가 왜 재미가 없는가? 혹은 재미도 없는 공부를 왜 해야하는가? 하는 점이다.
교육의 원래 목적은 (내가 교육학 시간에 배운대로라면), '교육은 인간 형성을 돕는 과정'이라고 한다.
식물은 자신의 가지를 넓히고, 키를 키우며, 자신의 형성을 추구하듯이, 인간도 자신의 형성을 추구한다.
교육이 없이도 인간은 자신의 형성을 추구한다. 교육이 없으면 인간은 그릇될 것이라는 생각은 잘 못 된것이다. 교육은 보조적 수단이지, 인간 형성을 통제하는 억압 장치가 아니다.
이대로라면 교육이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 혹은 흥미를 느끼는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과정이 억지로 참고 거쳐가야할 과정이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다음의 설명보다 더 설득력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교육은 인간의 형성에 초점을 두고 있는 과정이 아니라 사회의 요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교육의 문제가 낳고 있는 '공부 못하는 아이들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
아이들의 개인적 게으름을 비난하기에 앞서, 교육에 대한 비판을 해야할 것이다.
교육에 대한 개선 없이는 필연적으로 어떤 시대 어떤 나라에서도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생겨나게 된다.
노숙자들에 대해서도 같은 공식이 성립한다.
이들은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난한 것임이 분명하다.
일을 하지 않는 이유는 이들이 일을 재미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고, '억지로 참고 일하는' 사람들에 비해 게으르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노동'이란 원래 인간 본성의 실현과정이다. 생명력있는 생명체는 무엇이나 '행동'을 한다. 그결과로 움직임이 발생하고 때로는 축적물이 쌓이기도 한다.
우리가 '노동'이라고 부를때 이 단어에 포함시키는 개념중의 하나는 「하기 싫은 일이지만 댓가를 기대하고 하는 일」이라는 개념이다.
때문에 흔히, 댓가가 주어지지 않으면 누구도 '노동'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게 되지만, 사실은 노동은 생명 본연의 특징이다.
다만, 이러한 노동을 싫어하게 되는 이유는 외부적 원인, 즉 인간 활동을 그 자체의 목적으로 인식하지 않고, 수단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외부적 원인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노숙자들의 게으름은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억압의 결과로써 게으름이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강요된 노동'을 요구하는 사회를 개선해야한다. 그렇지 않고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도 노숙자 문제가 필연적으로 파생되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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