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철학책들을 읽으면서 인간 본성론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결론부터 적자면
인간의 본성이 착하다는 점에 대해 의심할 여지가 없다. 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제 식대로의 간단한 증명 방법은 이렇습니다.
흔히 이런 말이 있습니다.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착한일을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누구나 따뜻한 동굴 안에서 배부르게 생활 할 수 있게 되면 착한 사람이 된다.
모든 조건이 다 갖추어진 뒤에 착한일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참 좋은 문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만약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면, 모든 조건이 다 갖추어진 뒤에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어야 합니다.
때문에,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논의는 쉽게 접어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해주면,
인간 본성이 악하지 않다는 말은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착한것 같지도 않다.
사람은 주변 환경에 의해서 착한 행동 또는 나쁜 행동을 하게 되는거 같다.
라고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더군요.
이것은 사람의 행동 자체는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는 환경 결정론과 비슷한 관점입니다.
그리고 저도 한때는 이것이 '유물론' 이라고 잘못 이해했던 적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환경 조건이 좋은 사람은 착한 일을 하게 되고, 나쁜 환경의 사람은 나쁜 일을 하게 된다' 는 것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은 '좋은 환경을 추구하고, 나쁜 환경을 개선하려 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꺼라 생각합니다.
분명 환경 자체는 스스로 가치를 갖는게 아니라 물질적으로 중립적인 상태일 텐데,
거기에다가 '좋은' 혹은 '나쁜'이라는 형용사를 붙여서 구분하는 것 부터가 사람이 환경을 대하는 태도에 방향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행동은 환경에 의해 많이 좌우 되는 것이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이 환경을 개선하려 합니다.
자신의 행동이 (그 자체로는 중립성을 갖으면서)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고 인정한다 하더라도
환경에 대한 사람의 태도는 중립적이지 않고, 방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환경이 착한 행동을 하게 만들고, 사람이 이 좋은 환경을 추구 한다는 것은 즉 사람이 착한 행동을 추구 한다는 말과 같아 집니다.
때문에, 결국 인간의 본성이 착하다는 것이 증명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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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본성이 착한데 어째서 악한 행동을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할 차례입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이야기 할때에는
(앞에서 적은것과 같이) 「모든 조건이 다 갖추어진 상태」에서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이야기 해야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조건'은 보다 일반화 시켜서 『외부적 조건』을 말합니다.
모든 악한 행동의 시작은 이 『외부적 조건』이 불충분하게 갖추어 졌을 경우에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먹고 살 돈이 없다거나 병이 들어서 어디가 아프다거나, 부모중에 어느 한분이 없어서 어릴때부터 애정결핍을 겪었다거나 하는 등등의 이유로 나쁜 행동을 하게 된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의 본성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외부적 조건』을 개선시키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선한 상태에 도달하려고 시도 할 수 있습니다.
본성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이 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본성에 대한 논의는 다음 단계의 이야기,
『외부적 조건』을 완전히 만족스러운 상태로 개선 시키는 것이 가능한가 불가능한가??
의 이야기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본성에 대한 이야기 보다 훨씬 미묘하고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이 끊임 없이 『욕심』을 추구 하기 때문에 결국 분쟁이 끝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즉, 「외부적 조건이 결코 만족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인간이 착할 수 없다」는 이야기 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들이 어떨때 욕심을 부리는가 이해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무조건 적으로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만약 인간이 끊임 없이 욕심을 부리는 존재라면,
어째서 돌맹이들을 집안 가득 가져다 놓으려 하지 않고, 비가 오는날 빗물을 한방울이라도 더 많이 저장해 두려 하지 않을까요?
인간은 부족한 물건들에 대해서만 한정적으로 욕심을 부리게 됩니다.
즉 「인간이란 무한히 욕심을 부리는 존재」라는 것은 틀린 말입니다.
그러면 부족한 물건이란 무엇인가?
어떤 것이 부족한 물건이고 어떤것이 필요 이상의 물건인가?
이것을 정하는 기준은 두가지 입니다.
하나는
인간 본성에서 발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인간 본성에서 기인하는 면은, 『의식주』 정도입니다.
사람은 살아 있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먹고 입고 자는 것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어떤 사회 어떤 시대에도 공통적이었습니다.
때문에 의식주는 절대로 충족되어야만 하는 기본 조건입니다.
하지만, 먹고, 자고 입는 것에도 질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비싼 요리를 먹고 싶어 하고 어떤 사람은 넓은 집에서 전망 좋은 곳에서 살고 싶어 합니다.
이러한 요구는 인간 본성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대와 사회와 개인에 따라 모두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죽어도 비행기를 타고 다녀야만 『외부적 조건』이 만족 된다고 우긴다면
원시 시대의 사람들은 결코 욕구가 만족 될 수 없는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혹은, 미래에 살고 있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비행기가 만족 스러운 이동 수단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최소 『의식주』 보다 그 이상에 대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매우 상대적이고, 사회적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의 본성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욕구입니다.
때문에 이러한 욕구는 회의와 토론을 통해 민주적으로 상한선을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걸 잘 정하기만 하면 언제나 만족점을 찾을 수 있다는 특징도 있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사람은 욕심을 부리기 때문에 외부적 조건이 만족 될 수 없다. 이 때문에 인간은 필연적으로 악하다고 하는 이야기에 대해...
사람이 무한히 욕심을 부리는게 아니라 조건적으로 욕심을 부리며
이 조건적 욕심 중에서도 다시 두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의식주에 대한 욕구, 다른 하나는 사회적 욕구라는 것입니다.
전자는 반듯이 충족되어야 하는 것이고, 후자는 사람들끼리 타협점을 찾는 것이 가능합니다.
역사적으로 볼때 필연적으로 의식주를 모든 사람들이 풍부하게 누릴 수 없었기 때문에 계급이 생겨나고 분쟁이 생겨나고 전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럼 지금은 의식주를 풍부하게 제공할 만큼의 기술력과 물질을 가지고 있는데 왜 사람들이 모두 착해지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가 사람들에게 의식주를 담보로 일을 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을 사고, 옷과 식료품을 구입하는데에 쓸 돈을 벌어야 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당연히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자식을 낳고 자식이 다시 집과 옷과 식료품을 잘 살 수 있도록 돈을 벌 수 있도록 교육 시켜야 합니다. 결국 교육에 들어가는 돈도 의식주에 들어가는 돈에 해당하고, 이러한 돈을 벌기 위해서 또 일을 해야 합니다.
지금의 사회는 신기하게도 분명히 물질적으로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얻기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이유는 물론 사람들이 일을 할때에만 생존이 유지 되도록 하는 시스템에 원인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일을 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의식주를 담보로 하고 있는 사회를 살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모든 사람들이 착해 질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인식 방법이 결국 의식주에 대한 분배 구조가 개선된 새로운 사회에 대한 갈망을 낳게 되고,
그 대안으로 나와있는 것은 무정부주의라든가 사회주의라든가 공산주의라든가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새로운 사회에 대한 대안들은 인간 본성에 대한 긍정에서 출발하는 사상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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